애플은 요즘 AI 개발에 돈 한 푼 안 쓰고 있다. 그런데 주가는 1년 새 58% 올랐고, 시가총액은 세계 1위를 되찾았다. 반면 AI에 수천억 달러를 퍼붓고 있는 오픈AI는 적자 행진에 상장도 미뤄지고 있다. 이 기묘한 역전이 오픈AI가 아이폰 킬러를 만들겠다고 나선 진짜 배경이다.
AI 시대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은 AI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다

애플의 수익 구조를 보면 이 구도가 왜 불공평한지 바로 이해된다. 애플은 25억 대의 기기를 전 세계에 깔아 놓고 있다. 누군가 AI를 개발해서 사용자에게 전달하려면 어디를 거쳐야 하나. 결국 아이폰이다. 앱스토어다.
앱스토어에서 AI 앱으로 발생하는 수익의 34%가 챗GPT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챗GPT를 다운로드하고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애플은 플랫폼 수수료를 가져간다. 오픈AI가 열심히 AI를 만들수록 애플의 수익은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걸 "게이트키퍼"라고 부른다. AI 기업들이 돈을 쏟아부어 기술을 만들면, 애플은 그 기술이 사용자에게 닿는 통로에 앉아서 수수료를 받아 간다. 만들지 않아도 되고, 위험을 지지 않아도 된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자 애플은 아이폰 외 제품 가격을 20~30% 일제히 올렸다. 놀랍게도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였고, 주가는 또 뛰었다. AI 시대에도 똑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AI 연산 비용이 오르면 애플은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릴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오픈AI가 화가 난 이유, 그리고 선택지
오픈AI 입장에서 보면 상황이 제법 답답하다. 자기들이 기술을 만들어서 어렵고, 상장은 미뤄지고, 6,500억 달러의 현금이 소진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는데 정작 그 기술 덕분에 웃고 있는 건 애플이다.
오라클은 AI 인프라 투자를 체력 대비 가장 크게 늘렸다가 신용등급이 BBB 마이너스까지 강등됐다. 한 단계만 더 내려가면 정크 등급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오픈AI 주주이면서 AI 자본 지출로 주가가 부진하다. AI에 돈을 쓰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오히려 벌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논리는 단순하다. 애플처럼 하면 된다. 즉, AI가 사용자에게 닿는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면 게이트키퍼를 건너뛸 수 있다.
오픈AI가 화면 없이 음성으로만 작동하는 스마트폰을 구상하는 것도 이 맥락이다. 터치스크린이 아이폰의 핵심 혁신이었다면, 오픈AI는 그 자리를 AI 음성 인터페이스로 대체하겠다는 구상이다. 스티브 잡스가 버튼을 없앴다면, 오픈AI는 화면을 없애겠다는 발상이다.
조니 아이브를 65억 달러에 영입한 이유
이 전략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보가 조니 아이브 영입이다. 조니 아이브는 현재의 애플 디자인을 정립한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의 "영혼의 동반자"라 불리며 아이폰의 미니멀한 디자인 철학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오픈AI는 그를 65억 달러에 인수했다. AI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드웨어 디자이너를, 그것도 애플 출신 최고 디자이너를 이 가격에 데려왔다는 건 단순한 "디자인 강화" 이상의 신호다.
실제로 오픈AI가 기계식 키보드 제조사와 협업해 출시한 코딩용 키보드를 보면, 박스 디자인이 애플 포장과 상당히 비슷하다. 오픈AI 로고만 붙였을 뿐인데 품절됐다. 브랜드 파워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증거다.
조니 아이브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포장 박스 하나도 "언박싱 경험"으로 설계할 만큼 제품의 감각적 경험 전체를 디자인하는 인물이다. 오픈AI가 그를 원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이건 애플 같은 것"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역량이다.
애플이 법원까지 간 이유
애플에서 오픈AI로 이직한 직원이 400명이 넘는다. 조니 아이브 외에도 애플 비전 프로를 이끌던 리더 중 한 명도 최근 오픈AI로 넘어갔다.
애플은 이 상황을 그냥 두지 않았다. "오픈AI 신생 하드웨어 사업은 불법적으로 취득한 영업 비밀에 의존한, 근본적으로 썩어빠진 토대 위에 세워졌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요구 사항은 간단하다. 오픈AI가 향후 출시할 제품에 애플 기술을 일절 사용하지 못하도록 재설계하라는 것이다. 박스 디자인이 비슷한 것부터, 전직 직원들이 보유한 기술 노하우까지, 애플은 어떤 형태의 유사성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픈AI의 실제 승산은 어디에 있나
아이폰 킬러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지금까지 수없이 있었다. 삼성도,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했지만 아이폰 생태계를 뚫지 못했다.
오픈AI의 논리는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더 이상 혁신이 없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내연기관차처럼 기술이 성숙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비유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10년 후에는 아이폰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는 발언도 나왔다. AI 기기가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 시대의 플랫폼을 애플이 아닌 자신들이 쥐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현실적으로 오픈AI가 아이폰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아이폰과 공존하는 AI 스피커, AI 에이전트 기기처럼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쪽이 더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오픈AI가 먼저 공개한 제품이 AI 스마트 스피커였다는 점도 이 방향을 암시한다.
다만 방향이 무엇이든 오픈AI의 목표는 분명하다. 애플의 게이트키퍼 구조 바깥에 자신들의 하드웨어 접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스마트폰이든, 스피커든, 아직 이름 없는 새로운 기기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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