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정말 세계 패권을 원하는 걸까. 달러는 위안화에 밀려날까. AI에 쏟아지는 수조 달러는 거품일까. 이 질문들은 지금 글로벌 머니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논설위원 마틴 울프의 진단은 통념과 꽤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중국의 진짜 목표는 '세계 정복'이 아니라 '조공 질서의 복원'이다

많은 사람이 중국을 제2의 소련, 혹은 미국을 밀어내려는 수정주의 강대국으로 본다. 그런데 마틴 울프의 시각은 다르다. 그는 중국이 원하는 건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화가 중심이던 시절 누렸던 위상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중국의 목표는 이렇다. 주변국과 중국에 중요한 나라들이 중국을 지도국으로 여기고 예를 갖추는 상태, 즉 전통적 '조공 관계'의 현대판이다. 구체적으로는 자국 시장과 원자재에 대한 접근을 허용받고, 중국이 중시하는 사안에서 자국 이해를 고려받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전 세계에 군사기지를 두고 전쟁을 일으키는 방식의 패권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울프는 중국인들과의 대화 경험에서 그들이 그런 방식을 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비용도 크고 복잡하며, 무엇보다 14억 인구의 거대한 국가를 통제하는 것 자체가 압도적 내부 과제이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도, 대영 제국도 처음부터 세계 정복을 계획하지 않았다. 가까운 위협을 물리치다 보니 영토가 커졌고, 새로운 이웃이 또 위협이 되는 식으로 팽창이 이어진 것이다. 울프는 중국의 행보도 이와 비슷하게 '계획보다 사건이 흐름을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은 패권적 제국주의자도 아니고, 모든 걸 내버려 두는 수동적 존재도 아닌 그 중간, 중국 특유의 방식을 택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단정하지 않는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지 않는 한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이며, 중국은 군사적 개입보다 훨씬 은밀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미국과의 정면전은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스스로 무너뜨린 대중 견제 전선
그렇다면 지금 세계를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쪽은 어디일까. 울프의 답은 직설적이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기존 공화당 주류는 중국과의 경쟁을 '세계를 규정하는 초강대국 경쟁'으로 보고, 동맹을 결집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핵심은 서방 동맹 전체가 뭉치면 경제 규모에서 중국보다 여전히 훨씬 크다는 것이다. 개별로는 약해도, 함께라면 충분히 중국에 규칙 준수를 요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전략을 통째로 버렸다. 동맹 감각도, 미국 패권에 대한 구상도 없고, 미국이 만든 국제 제도와 협정에서 줄줄이 빠져나왔다. WHO, 기후 협정, 각종 국제기구. 모두 미국이 주도해 만든 틀이었다. 울프는 트럼프를 '개입주의적 고립주의자'라는 묘한 표현으로 정의한다.
더 이상한 건 트럼프가 시진핑을 포함한 독재자들을 공개적으로 존중한다는 점이다. 그는 중국을 이념적 적으로 보지 않고, 미국산 반도체와 제품의 중국 수출에도 훨씬 관대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가 한 건 나라별 양자 무역수지를 근거로 관세를 마구잡이로 올리고 무역전쟁을 벌인 것이었고, 울프는 그 결과를 '전략 없는 패배'로 평가한다.
결과는 명확하다. 미국과 유럽이 따로 놀게 됐고, 중국은 이제 미국과 유럽을 각개격파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얻었다. 한국과 일본처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동맹국들의 처지는 더 곤란해졌다. 울프는 이 구도에서 지금 서방이 지고 있다고 말한다.
달러는 위안화에 밀릴까 — 탈달러화의 실제 구조
미국의 중동 개입, 페트로달러 체제의 동요. 달러 패권이 흔들린다는 얘기가 반복된다. 울프의 분석은 여기서도 통념을 비튼다.
그는 달러의 준비통화 역할이 미국의 근간인 것처럼 과장됐다고 말한다. 각국은 이미 10년도 더 전부터 달러 보유액을 늘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중국과의 무역이 위안화로 결제되고, 일부 국가가 위안화 잔고를 보유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중동 산유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동맹 안보를 보장하는 데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고, 중국이 이란 문제에 더 효과적인 영향력을 가진 상황에서 위안화 권역에 일부 편입되는 건 합리적 선택이다. 페트로달러의 일부가 페트로위안이 되는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울프는 위안화가 달러를 구조적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본다. 이유는 하나다. 중국이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안화가 자유롭게 교환·태환되는 기축통화가 되려면 외환 통제를 완전히 풀어야 한다. 그런데 외환 통제를 놓치는 순간 중국 통치 체제는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14억 인구를 관리하는 당에게 그 선택지는 없다.
달러에 더 현실적인 위협은 위안화가 아니라 유로화다. 지금도 달러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의미 있는 기축통화는 사실상 유로화뿐이고, 달러가 60%에 가까운 비중인 데 비해 유로화는 약 30% 수준이다. 유럽이 공동 재정 체제를 완성하고 통합을 더 진전시킨다면, 장기적으로 달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위안화가 아닌 유로화가 될 것이라는 게 울프의 전망이다.
결국 달러 패권의 열쇠는 미국의 정책에 달려 있다. 미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일이 반복되면, 탈달러화 흐름은 가속된다. 지금 그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고 있는 건 중국이 아니라 미국 행정부다.
AI 투자 붐은 거품인가 — 닷컴과 다른 점, 같은 점
수조 달러가 AI에 쏟아지고 있다. 이게 닷컴 버블의 재현인가, 아니면 진짜 산업 혁명인가. 울프의 답은 '둘 다'다.
우선 실체는 분명히 있다. AI는 판을 바꿀 기술이고, 이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OpenAI, Anthropic 같은 프런티어 기업들은 매출도 내고 있어 닷컴 버블 당시처럼 사업 모델 자체가 없는 상태와는 다르다.
닷컴 버블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도 있다. 당시 버블 속 회사들 중 훗날 핵심 기업으로 남은 곳은 없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은 버블이 꺼진 뒤에야 성장했다. 반면 지금 AI 프런티어 기업들 일부는 실제 사업체로 보인다는 게 울프의 판단이다.
그러나 수익성 문제는 심각하다. 중국 업체들이 AI 모델을 사실상 무료로 내놓는 상황에서 이 경쟁이 얼마나 큰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 막대한 투자를 정당화하려면 누군가 엄청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강력한 독점이나 준독점 지위가 필요한데, 현재 구도에서 그런 위치를 가진 기업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울프가 닷컴보다 더 적절한 비유로 드는 건 광섬유 투자 붐이다. 인터넷 시대가 온다는 건 맞았지만, 광섬유에 과잉 투자한 통신사들 상당수는 무너졌다. AI가 세상을 바꾸는 건 맞더라도, 지금 데이터센터에 투자한 많은 주체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 기술의 실체와 투자 수익성은 별개의 문제다.
데이터센터의 핵심 비용인 칩은 계속 교체해야 하고, 전기와 물 등 막대한 자원이 소모되며, AI 인프라를 향한 정치적 반발도 커지고 있다. AI 분야에서 큰 돈을 버는 주체가 지금 가장 많이 투자하는 곳과 다를 수 있다는 건, 닷컴 때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지금 글로벌 판도에서 한국이 봐야 할 지점
울프는 인터뷰 중 한국과 일본을 직접 언급한다. 미국과 유럽이 따로 노는 상황에서 가장 곤란한 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동맹국들이라고. 중국이 너무 중요한 나라들이 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지정학 교과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 미중 반도체 전쟁, AI 패권 경쟁은 제조업 기반 수출국의 공급망과 시장 전략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달러 패권의 흔들림은 외환시장과 원자재 결제 구조를 바꾸고, AI 투자 거품의 향방은 반도체 수요와 데이터센터 투자 사이클을 결정한다.
울프의 분석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지금 글로벌 판도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은 중국의 부상이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 만든 질서를 스스로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틈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하는 쪽은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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