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 마코토 작품 해석을 찾아보면 금세 한 가지 난관에 부딪힙니다. 이 사람을 여성혐오적 작가라고 봐야 할지, 일본 사회를 조롱하는 풍자화가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문제적 예술가라고 봐야 할지 좀처럼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 혼란 자체가 작품을 읽는 출발점에 가깝습니다. 아이다 마코토의 그림은 답을 보여주기보다 관객이 어느 지점에서 불편해지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왜 ‘천재라서 미안합니다’라는 제목부터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2012년 겨울 도쿄 롯폰기힐스의 모리미술관에서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제목은 《天才でごめんなさい》, 우리말로 옮기면 ‘천재라서 미안합니다’였습니다.
자신을 천재라고 치켜세우면서 동시에 사과하는 제목입니다. 농담인지 자의식인지 경계를 잡기 어렵습니다. 영문 전시명도 《Monument for Nothing》이었습니다. 거창한 기념비와 ‘아무것도 아님’을 같은 문장에 놓은 셈입니다.
전시장 안에서도 이런 충돌은 계속됐습니다. 신체 훼손과 소녀를 결합한 작품 때문에 시민단체의 항의를 받는가 하면,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일장기와 태극기를 든 두 인물을 마주 세운 〈아름다운 깃발〉이 걸려 있었습니다. 작품마다 태도가 바뀐다기보다 서로 맞지 않아 보이는 태도를 일부러 동시에 꺼내놓는 쪽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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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라는 비판과 표현의 자유라는 옹호를 동시에 받으면서 본인은 자신을 ‘광대’에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아이다 마코토를 이해하려 할수록 “그래서 이 사람은 어느 편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점점 무력해집니다.
아이다 마코토 작품 해석은 왜 ‘잡종’에서 시작될까
그의 스물여덟 살 무렵 작품 〈거대 후지 대원 VS 킹기도라〉를 보면 이후 작품에서 반복될 방법이 이미 보입니다. 3m가 넘는 거대한 화면에 특촬물의 여성 캐릭터와 킹기도라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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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화면의 뿌리는 한 군데가 아닙니다. 에도 시대 춘화로 알려진 호쿠사이의 〈문어와 해녀〉 구도부터 《울트라맨》, 고지라 시리즈의 킹기도라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가 뒤섞여 있습니다.
호쿠사이의 〈문어와 해녀〉를 떠올리게 하는 구도입니다.
《울트라맨》 33화에서 거대화된 아키코 후지의 이미지가 겹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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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상대역은 고지라 시리즈의 킹기도라입니다.
우키요에와 특촬물, 전통 회화와 오타쿠 문화, 고급미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한 화면에서 무너뜨리는 방식이 이때부터 이미 등장합니다.
잘 그린 그림이 왜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질까
아이다 마코토의 도발적인 소재만 먼저 접하면 그림의 기술적인 부분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더 난감해지는 순간은 오히려 화면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입니다.
대학원 시절의 〈あぜ道(논두렁 길)〉에서는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의 가르마가 그대로 초록 들판 사이의 길로 이어집니다. 인물과 풍경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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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야마 카이이의 〈길〉처럼 전후 일본에서 익숙한 고요한 풍경의 감각을 떠올리게 하지만, 아이다는 그 길을 소녀의 머리 위에서 시작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이 정교한 회화적 감각을 훨씬 불편한 소재에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눈은 아름답다고 반응하는데 머리는 그 장면을 거부하게 만드는 충돌이 그의 작품에서 반복됩니다.
논란의 소녀 그림에서 실제로 부딪힌 것은 무엇이었나
〈犬(雪月花のうち“月”)〉은 아이다 마코토를 둘러싼 논쟁을 피해 갈 수 없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보름달과 일본화 특유의 차분한 화면 속에 신체가 훼손되고 목줄을 한 소녀가 등장합니다. 소재의 잔혹함과 화면의 아름다움이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아이다 마코토, 〈犬(雪月花のうち“月”)〉, 1996, 광물안료·아크릴·화지를 사용한 작품입니다.
2013년 1월에는 시민단체와 온라인 청원 참가자들이 이러한 작품들이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을 문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항의했습니다. 함께 논란이 된 작품에는 〈ジューサーミキサー(주서 믹서)〉와 〈切腹女子高生(할복 여고생)〉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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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 믹서〉는 믹서 속 수많은 소녀가 붉은 액체로 변해가는 장면을, 〈할복 여고생〉은 여고생과 할복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소재를 결합했습니다.
모리미술관은 작품을 철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적 표현이 강한 작품을 ‘R18’ 공간으로 분리하고 입구에 경고를 붙였습니다.
여기서 쟁점은 단순히 작품을 허용하느냐 금지하느냐만이 아닙니다. 작가가 무엇이든 제작할 자유와 공공 미술관이 관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는 서로 다른 문제로 남았습니다.
아이다 마코토를 볼 때 놓치기 쉬운 기준
충격적인 소재 하나만 떼어 작가 전체를 규정하면 다른 작품과 충돌합니다. 반대로 ‘예술이니까 모두 허용된다’고 넘겨버리면 실제 전시 과정에서 발생한 항의와 공공기관의 책임 문제를 놓치게 됩니다. 두 방향을 동시에 보는 것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 가깝습니다.
일장기와 태극기를 마주 세운 〈아름다운 깃발〉은 무엇을 보여줄까
아이다 마코토의 다른 얼굴은 〈美しい旗(戦争画RETURNS)〉, 즉 〈아름다운 깃발〉에서 드러납니다. 낡은 맹장지 두 짝을 이어 만든 병풍 위에 일장기를 든 사람과 태극기를 든 사람이 서로 마주 서 있습니다.
아이다 마코토, 〈美しい旗(戦争画RETURNS)〉, 1995. 제목에는 ‘전쟁화 RETURNS’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연작은 태평양전쟁 당시 국가 선전에 동원됐던 전쟁기록화를 종전 50년이 된 1995년에 다시 불러낸 작업입니다. 한쪽에 일본 국기만 있었다면 애국화처럼 보일 수 있고, 다른 쪽에 태극기만 있었다면 또 다른 민족적 이미지로 읽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마주 보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두 국기의 승패보다 화면 아래에 남은 폐허를 함께 보게 만든다는 점이 〈아름다운 깃발〉에서 놓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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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화 RETURNS는 왜 승리도 패배도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까
〈紐育空爆之図(戦争画RETURNS)〉, 즉 〈뉴욕 공습도〉에서는 상황이 더 기묘해집니다.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 위로 일본의 제로센이 날아가며 거대한 ∞ 모양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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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마코토, 〈紐育空爆之図(戦争画RETURNS)〉, 1996, 6폭 병풍.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뉴욕을 폭격했다면’이라는 가상의 전쟁 장면입니다. 작가는 전쟁의 선악을 쉽게 나누기보다 경계가 흐려지는 혼돈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일본의 승리를 상상한 장면처럼 보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없이 반복되는 파괴의 이미지처럼 보입니다. 작품이 어느 쪽 해석도 완전히 닫아버리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다 마코토의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전쟁과 소녀만 보면 놓치게 되는 또 다른 작품들
아이다의 화면에는 일본 사회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제작한 작품에서는 회사원들이 거대한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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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경제 붕괴 뒤 기업을 위해 소진된 일본 회사원들에 대한 애도와 풍자로 읽히던 그림은 완성 직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무너져 쌓인 사람들의 이미지라는 또 다른 의미까지 얻게 됐습니다.
작업 과정과 확대 이미지를 보면 화면을 채우는 노동량과 작품의 실제 규모가 훨씬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또 다른 대형 작업은 2007년 발표 이후 여러 차례 수정됐고, 2010년 6월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에서 관객이 지켜보는 공개 제작을 거쳐 마지막 작업을 마쳤습니다. 도발적인 아이디어만 던지고 끝나는 작가라기보다 거대한 화면을 오랫동안 붙들고 작업하는 면도 함께 존재합니다.
공공미술관이 작품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나
2015년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는 또 다른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어린이와 성인이 함께 보는 기획전에 아이다가 가족과 함께 ‘会田家’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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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전시된 영상에서는 ‘일본 총리’를 자칭하는 남자가 국제회의에서 서툰 영어로 연설하며 일본이 아시아에 가한 침략, 특히 한국과 중국을 향해 사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미술관은 시민 한 사람의 항의를 이유로 작품을 철거하거나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공공기관이 해당 내용을 추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자 약 일주일 뒤 요청을 철회했고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 장면 때문에 아이다 마코토를 단순한 정치적 꼬리표 하나로 설명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소녀를 소재로 한 작품 때문에 강한 비판을 받았던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는 일본의 침략과 사죄 문제를 전면으로 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유명세에 비해 아이다 마코토 작품 가격은 왜 조용했을까
아이다 마코토의 이름이 만들어내는 논쟁에 비하면 공개 경매시장의 움직임은 의외로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원문에서 제시된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주요 초기 작품 상당수가 다카하시 류타로 컬렉션에 들어가 있어 시장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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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KU(戦争画RETURNS Side B)〉는 아크릴과 유화 물감을 사용해 종이에 그린 뒤 패널에 부착한 대형 작품입니다.
원문에 따르면 공개 경매 최고가는 2009년 11월 크리스티 홍콩에서 거래된 이 작품으로 약 290만 홍콩달러, 당시 약 37만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 만들어낸 사회적 화제에 비하면 가격보다 작품이 만들어내는 논쟁 자체가 더 크게 기억되는 작가라고 볼 만합니다.
그의 활동은 그림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책과 글을 통해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어갔다는 점 역시 작품을 회화시장 가격만으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아이다 마코토를 한 문장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
한국 관객에게 아이다 마코토는 꽤 까다로운 작가입니다. 어떤 작품은 불쾌감을 주고, 그 불편함을 쉽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지울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작가는 일장기와 태극기를 마주 세우고 일본의 침략을 사죄하는 가상의 총리를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본인 역시 자신을 확고한 신념을 설파하는 카리스마형 인물보다는 사람을 화나게 하고 웃기고 짜증나게 만드는 ‘피에로’, 즉 광대에 가깝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다 마코토 작품 해석에서 가져갈 기준은 ‘이 작가가 옳은가’보다 ‘왜 서로 모순되는 이미지를 일부러 같은 자리에서 충돌시키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천재라고 자칭하며 사과하고,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도 자신을 광대라고 부릅니다. 소녀 이미지로 비판받는 동시에 전쟁과 국가, 일본의 책임을 건드리는 그림과 영상을 만듭니다. 그 앞에서 느끼는 혼란이 감상의 실패라기보다 오히려 작가가 정확히 노린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일본 현대미술을 무라카미 타카시나 귀여운 캐릭터의 표면만으로 떠올렸다면, 아이다 마코토는 그 이미지의 정반대편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좋아하기는 어려워도 왜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는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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