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한 그릇, 간장 한 종지. 한국인의 밥상을 수천 년간 지탱해온 가장 오래된 맛이 마침내 세계적 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 정부간위원회는 한국의 장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했다. 이로써 한국은 총 23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23번째, 그리고 가장 일상적인 유산
2001년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강술래, 줄타기까지 — 한국의 유네스코 목록은 주로 제례·공연 문화 중심으로 채워져 왔다. 장담그기는 결이 다르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매일의 식탁에 놓이는 것, 무대가 아니라 장독대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이번 등재를 결정하며 주목한 지점도 바로 그 '보편적 일상성'이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 그 문화적 가치가 간과되어 왔다는 역설이, 이번 등재의 핵심 서사가 됐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장담그기의 유네스코 등재는 일상 속 전통의 재발견이다.

집마다 다른 맛, 그것이 유산인 이유
유네스코 심사에서 결정적 평가를 받은 것은 '다양성'이었다. 콩을 고르는 방식, 메주를 매다는 시기, 소금물의 농도, 숙성 기간 — 가정마다 대를 이어 전해온 방식이 모두 다르다. 이 차이가 획일화된 레시피가 아닌, 살아있는 문화의 증거로 인정받았다. 표준화된 공정이 아니라 각 가문의 역사와 환경이 맛에 녹아드는 구조 자체가, 무형문화유산의 정의에 정확히 부합한 것이다.
- 메주 제조 — 콩 선별부터 성형·건조까지, 발효의 기초를 놓는 과정
- 소금물 배합과 장 가르기 —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는 시점과 방식이 집마다 다르게 전승
- 장독 숙성 문화 — 계절과 햇빛, 바람까지 계산한 야외 숙성의 감각적 기술
자연이 만드는 맛, 인위가 없는 발효
된장도 간장도 공장에서 설계된 맛이 아니다. 자연 발효균이 시간과 온도에 반응하며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은 개입이 아니라 '조건을 만드는 것'에 가깝다. 지금 주목할 것은 이 발효 철학이 전 세계적인 발효 식품 트렌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김치에 이어 장류까지, 한국 발효 문화는 웰니스와 슬로푸드를 키워드로 하는 글로벌 식문화 담론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누적 보유 건수: 23건 (2024년 기준)
등재 이후가 더 중요하다
유네스코 등재는 보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부는 2026년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을 다음 등재 대상으로 추진 중이다. 장담그기 문화의 경우, 도시화와 아파트 생활로 장독대가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전승의 물리적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등재를 계기로 식품 기업과 지자체, 문화기관이 어떻게 이 문화를 현대의 생활 방식 안으로 재편입시킬 것인지가 이번 시즌 주목해야 할 다음 과제다.

유산으로 지정된 순간, 그것을 살아있게 유지하는 책임도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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