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러 갔는데 투표용지가 없었다. 이 황당한 일이 실제로 지방선거 현장에서 벌어졌다.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거리로 나온 이유는 단 하나다. 참정권은 누군가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왜 18개 대학이 같은 날 시국선언을 했나

6월 10일,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공동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건국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숙명여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충북대 등 지역과 계열을 가리지 않았다.

이들이 하나로 묶인 이유는 명확하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시국선언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붙어 있다.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단체가 합류하면서 청년들의 분노가 왜곡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 학생들 사이에 많았다." 왜곡되지 않기 위해, 각 대학이 개별이 아닌 연합 형태로 나선 것이다.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에서 직접 그은 선

이번 시국선언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학생들이 스스로 경계를 설정했다는 점이다. 서울대 학생회는 선언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이 사안을 어떠한 정치적 이해관계나 활용의 목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오직 민주주의의 근간과 교육의 본질을 바로세우기 위함임을 분명히 밝힌다."

또한 "이번 사태를 근거로 그간의 선거 결과 및 민주적 선거 체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선관위를 규탄하되,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흐름과는 선을 그은 것이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4·19 정신을 언급하며 "물리적 충돌이 아닌 공론장에서의 민주적 합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외침의 방식도 민주적으로 선택했다.

투표용지는 왜 부족했나, 선관위 공식 해명 내용

선관위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핵심은 투표소별 투표용지 배분 실패다. 송파구를 예로 들면, 구 전체에는 용지가 42장 남아 있었지만, 146개 투표소에 고르게 배분하는 데 실패했다.

원래 본 투표용지 인쇄 비율의 하한선은 60%였다. 그런데 이를 50%로 낮추고, 각 구·시·군 선관위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위임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어떤 지역은 최하한인 50%를 선택했고, 어떤 지역은 100%를 선택했다. 분산된 결정 구조가 곧 분산된 실패로 이어졌다.

고려대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문제가 왜 참정권 침해로 이어졌는가. 선거 관리 체계가 왜 국민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보호하지 못했는가."

4부 요인이 한목소리로 내놓은 요구

대통령은 4부 요인 회동에서 "투표권 행사가 충분한 국민 주권 실현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대법원장은 "헌법적 독립성이라는 그늘 아래 국민의 참정권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안일해질 수 있는지 정확하게 드러난 일"이라고 했다. 국무총리는 선관위가 위로부터 아래까지 전면 각성해야 한다며 검경의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선관위원장은 공개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퇴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됐고, 수사기관의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도 예정되어 있다.

이 사안을 정쟁으로 만들면 누가 손해인가

이번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한 가지 공통된 우려를 입 모아 말했다. 선관위 규탄이 특정 정치 세력의 확장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 대학생은 시국선언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문제지, 이걸 정쟁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정치적인 얘기가 아니다."

참정권 침해는 여야 어느 편의 문제가 아니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투표용지가 없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지지 정당이 없다. 그 사람의 권리가 침해된 것이다. 이 사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는 순간, 문제의 본질은 흐려지고 실질적인 재발 방지는 뒤로 밀린다.

학생들이 먼저 그 선을 그었다. 그 신념과 용기가, 지금 이 사안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