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김정은은 TV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경제 위기를 사과했다. 그로부터 불과 5~6년이 지난 지금, 뉴욕타임스는 그를 '북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진핑이 7년 만에 직접 평양을 찾아간 이유

지난 6월 8일, 시진핑 주석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중국 지도자가 북한을 직접 찾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은 김정은이 중국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였다.
공식 발표 내용은 별게 없었다. 비핵화 얘기도 없었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사열식, 공연 관람, 기념 식수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분석했다. "이번 방문은 김정은의 승리다."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급격히 밀착되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러시아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시진핑이 직접 평양을 찾아 "내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러 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이 중국을 움직인 셈이다.
코로나 때 망하기 직전이던 북한이 어떻게 달라졌나
2021년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경제를 실패했다"는 단어를 직접 썼다. 기본 생필품조차 상점에서 구하기 어려웠고, 탄광 생산은 멈췄으며 중국과의 교역도 극감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수준의 위기를 다시 맞을 수 있다고 봤다.
김정은은 그 위기를 내부 단속으로 돌파했다. 암시장 단속, K팝·K드라마 시청 시 처형, 지하 시장 해체. 패닉에 빠진 인민들을 강압으로 묶어 두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직후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전쟁이 북한에 구명줄이 된 구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북한은 곧바로 파병을 결정했다. 현재까지 1만 5천 명 이상의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됐고, 그 중 상당수가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이를 통해 북한이 벌어들인 외화가 100억 달러 이상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북한 GDP가 약 270억 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GDP의 40%에 가까운 돈이 단기간에 들어온 셈이다.
파병 대가로 러시아는 군사 기술 지원, 식량 지원, 석유 지원은 물론 관광객 파견까지 약속했다.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대교 건설도 진행 중이다. 경제 고립이 눈에 띄게 완화된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상호 방위 조약도 체결했다.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챙긴 거래였다.
청년들의 목숨이 외화가 되는 또 다른 경로
전쟁에서 러시아 청년 약 50만 명이 사망하면서 러시아 내 노동력이 심각하게 부족해졌다. 실업률이 2.2%까지 떨어져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가 됐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게 북한이었다.
기존에 러시아에서 일하던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쟁을 피해 빠져나가자, 북한 근로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현재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는 적게는 1만 5천 명, 많게는 5만 명으로 추산된다. 중국에도 약 20만 명이 파견돼 있다.
노동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임금도 올랐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월급은 최대 1,200달러(약 180만 원)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기업들도 노동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야간 수당을 신설하고 급여를 올렸다. KDI는 이 같은 해외 파견 노동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북한 전체 노동력의 10%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단, 이 돈이 노동자 개인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건 아니다. 북한에는 '국가 계획분'이라는 강제 납부 제도가 있어, 벌어들인 임금의 대부분을 북한 정권에 내야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오히려 빚을 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3년 주기로 순환 파견하고 가족을 국내에 묶어 두는 방식으로 이탈을 막는다.
북한이 세계 최대 암호화폐 도둑인 이유
여기에 또 하나의 외화 수입원이 있다. 암호화폐 해킹이다.
북한은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와 지갑을 해킹하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다. 국가 조직이 담당 부서를 두고 운영하는 구조다. 한 해 동안 북한이 훔친 암호화폐만 12억 달러(약 1조 8천억 원)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고, 최근에는 16억 달러(약 2조 원) 이상을 털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우리나라 암호화폐도 3천만 달러 규모가 피해를 입었다.
전쟁 특수, 해외 파견 노동자 송금, 암호화폐 해킹.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북한 경제는 실질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양이 달라지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들
북한 GDP는 5년 전 35.3조 원에서 43.7조 원으로 약 20% 늘었다. 연간 3% 수준의 성장률로, 같은 기간 1~2%에 머문 한국의 성장률을 웃돌았다. 물론 명목 GDP 자체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수준이지만, 사실상 바닥에서 반등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위성 사진으로도 변화가 잡힌다. 북한의 야간 야경이 5년 전보다 약 3배 밝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예전엔 평양 중심도 밤이 되면 완전히 암흑이었지만, 지금은 네온사인이 켜진다. 평양 거리의 자동차 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중국산 전기차와 수입차 매장이 생겼고, 교통량이 폭증해 교통법규 캠페인 방송이 나올 정도다.
김정은은 전국적인 건설 붐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판 미사일 이름을 딴 화성 아파트(40층짜리)가 평양에 세워졌고, 지난해에만 평양에 1만 채의 신규 주택이 건설됐다. LA나 시카고의 같은 기간 신규 주택 공급보다 많다. 러시아 파병 전사자 유가족에게 이 아파트를 분양해 민심을 달래는 데도 쓰이고 있다. 북한 근로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배달 결제를 하고, 앱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게 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경제 성공 사례가 바로 북한이다."
이게 한국과 무슨 관계인가
북한 경제가 좋아지면 좋은 일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의 상당 부분은 핵잠수함,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쓰이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군사 기술 지원을 받으면서 무기 개발 속도도 빨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직접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파병됐다가 돌아온 북한군은 실전 경험을 갖게 됐다. 드론 전술, 현대전 대응 방식을 몸으로 익힌 병력이 수천 명 단위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실전을 겪어 본 군대와 그렇지 않은 군대의 차이는 크다. 한국의 안보 부담이 실질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때 망하기 직전이라던 북한은 지금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배경엔 청년들의 목숨이 있었다. 북한 청년이든 러시아 청년이든 마찬가지로.
댓글 36
로그인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