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을 중세의 낡은 역사로 알고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9년, 불과 10년 사이 60개국에서 1만 5천에서 2만 명이 마녀로 낙인찍혀 피해를 당했다. 마녀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마녀사냥은 중세가 아니라 17~18세기에 절정을 이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틀리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마녀사냥 하면 흔히 암흑의 중세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17세기와 18세기에 가장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한창이던 시기, 즉 인류가 '이성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던 바로 그 시기였다.
희생자 수에 대한 오해도 크다. 900만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이를 엉터리로 본다. 실제로는 약 8만 명이 기소되고, 그중 4만에서 6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이 숫자도 결코 작지 않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숫자와는 큰 차이가 있다.
또 하나의 오해. 마녀로 몰린 사람이 여성만은 아니었다. 남성도 적지 않은 숫자가 마법사로 지목돼 처형당했다.
마녀사냥이 일어난 진짜 원인 — 종교·경제·정치·심리가 모두 얽혔다
마녀사냥에는 단일한 원인이 없다. 여러 요소가 동시에 터진 결과였다.
첫째, 종교 경쟁이 마녀를 '발굴'하는 동기가 됐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서로 "우리가 더 훌륭한 종교"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 악의 상징인 마법사를 더 많이 잡아내려는 비가격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종교 전쟁이 활발했던 독일에서 마녀재판과 사망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스페인처럼 중앙 종교 재판소가 강하게 작동한 나라에서는 오히려 마녀사냥이 적었다. 중앙 권력이 무책임한 고발을 걸러낸 것이다.
둘째, 경제 위기가 희생양을 요구했다. 16세기 유럽은 신대륙에서 은이 대거 유입되며 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았다. 곡물 가격이 4배에서 6배까지 뛰었고, 기후 위기로 인한 흉작과 가축 전염병이 겹쳤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은 "왜"라는 구조적 질문 대신 "누구 때문에"라는 질문을 던졌다.
셋째, 정치·사법 공백이 집단 폭력을 허용했다. 중앙 권력이 지방까지 미치지 못하면, 지역 영주가 모든 것을 쥔다. 그 영주가 이상한 사람이면 끔찍한 일이 곳곳에서 터진다. 반대로 중앙집권이 강한 곳에서는 허튼 고발과 무책임한 선동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다.
넷째, 규문주의 사법 구조의 함정이 있었다. 기소한 사람이 수사하고, 수사한 사람이 재판한다. 무고에 대한 처벌도 없다. 이 구조에서 피고는 처음부터 유죄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탄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녀는 어떻게 '선택'됐나 — 경계에 선 사람들의 비극
누가 마녀로 지목됐는지를 보면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집요하게 작동하는지 드러난다.
주로 타겟이 된 사람들은 소외된 사람, 외국인,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또는 오랫동안 갈등을 쌓아온 이웃이었다. 어떤 한 집안에 불행이 생기면, 오래전부터 불편했던 이웃이 떠오른다. 갈등이 누적된 상태에서 나쁜 일이 터지면, 그 사람이 마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핵심은 '경계'에 있는 사람이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사람, 분류하기 어려운 사람은 인간에게 오염의 감각을 준다. 미슐랭 식당의 맛있는 소스도 옷에 떨어지는 순간 더러움이 되는 것처럼, 자기가 속한 범주 밖에 있는 사람은 '제거해야 할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거기에 권력이 없는 사람이면 더욱 쉽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의심받아도 건드리기 어렵다. 반대로 옹호해 줄 사람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참에 잘됐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그리고 마녀사냥이 시작되면 자기 보존 본능이 집단 폭력을 심화시킨다. 마녀사냥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으면 자신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공포. 그래서 사람들은 더 열렬히 참여한다. "나는 절대 마녀가 아니라는 걸 보여야 되니까."
마녀사냥은 어떻게 멈췄는가 — 그리고 왜 지금도 계속되는가
마녀사냥을 멈춘 요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30년 전쟁 종식과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교 전쟁이 끝나고 종교의 자유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 다른 하나는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높아지고 정치·사법 시스템이 안정화된 것이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마녀사냥이 멈춘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숨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도 농촌에서는 '다이안'이라 불리는 여성이 마녀로 몰려 살해된다. 메커니즘은 16세기 유럽과 동일하다. 누군가 병들거나 가축이 죽거나 흉작이 들면 점쟁이를 찾아가고, 점쟁이가 마녀를 지목한다. 지목되는 사람은 대부분 홀로 사는 노인 여성, 자녀 없는 여성, 토지를 가진 여성이다. 2025년 7월에도 인도 비하르주에서 가족 다섯 명이 마녀라는 비난을 받고 마을 군중에게 산 채로 불태워졌다.
아프리카 가나에는 '마녀 캠프'가 실재한다. 마녀로 몰려 도망쳐 온 여성들이 모여 사는 비공식 캠프다. 2025년 4월 국제 엠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4개 캠프에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반마법 수사대'가 있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이 주요 표적이다. 2011년에는 한 여성이 마법과 점술 혐의로 실제 참수형을 당했다.
현대판 마녀사냥 — 캔슬컬처와 집단 폭력의 구조
현대 선진국에서 마녀사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어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처형 대신 사회적 처형이었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는 유치원 교사들이 사탄 의식에 아이들을 동원했다는 비난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수십 명이 기소되어 수십 년의 징역형을 받았지만, 나중에 거의 모든 사례가 근거 없음으로 밝혀졌다. 암시에 약한 아이들이 의심스러운 심리치료 기법으로 허위 증언을 했고, 미디어가 선정적 보도로 이를 증폭시켰다.
지금의 캔슬컬처는 어떤가. 어떤 인물의 발언이나 행동이 도덕적으로 문제라고 지목되면, 수만 명이 몰려가 동시에 공격하고 해고와 추방을 요구한다. 이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구조가 마녀사냥과 동일하다.
웃으면 뻔뻔하다. 눈물을 흘리면 악어의 눈물이다. 침묵하면 반성 안 했다. 반성의 말을 하면 진정성이 부족하다. 이 구도 안에서는 어떤 반응도 마녀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탈출구가 없다. 이것이 마녀재판의 구조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질문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마녀사냥은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한 결과가 아니다. 나쁜 구조가 평범한 사람들을 나쁜 행동으로 이끈 결과다.
경제적 불안이 극심하고,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사회적 혼란이 클 때, 카리스마 있는 누군가가 "저 사람이 문제야"라고 지목하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방향으로 쏠린다. 중앙 권력과 이성적 시스템을 우회하고, 집단의 분노를 한 개인에게 투사한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기독교의 핵심 공헌을 이렇게 말했다. 마녀가 죄 없다는 것을 말해 준 것. 예수 자신이 군중의 불안과 분노, 사적 권력의 남용, 중앙 권력의 방기가 맞물려 일어난 마녀사냥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그가 죄없다고 말해 준 것이 희생양 구조에 균열을 낸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마다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지금 내가 SNS에 쓰는 댓글, 지금 내가 동참하는 여론, 지금 내가 향하는 분노의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를 봐주며 살아왔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마녀사냥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